가까이 있는 꽃 / 도종환
가까이 있는 꽃
/ 도 종 환
아침부터 안개가 산을 덮고 있습니다.
어린 산국들이 아직 노란 잎에 묻은
이슬을 말리지 못한 채
옹송거리고 모여앉아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향기를 맡아보니
그 향기가 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작다고 향기가 적은 게 아닙니다.
가을 산의 쑥부쟁이도 구절초도
다 저마다 짙은 향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산박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들깨를 베어말리는 이맘때
밭에서 바람결에 얹혀 오는 들깨 향기나
산박하 향기의 고소한 내음을 좋아합니다.
이것들은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뜨이지 않고
단풍의 아름다움에 가려서
사람들의 눈길을 제대로 받지 못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하나하나는
다 저마다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낮에는 동요를 들었습니다.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는 거라서
아는 분이 복사해서 보내준 음반입니다.
처음엔 책을 보며 노래를 들을까 하다가
그냥 노래만 듣기로 하였습니다.
어렵게 음반을 구해서 보내준 분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것에 마음을 분산시키지 말고
노래만 들어보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동요입니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
따옥 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어린 아이들의 서툰 목소리로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는 오래 보이지 않고 가려 있던
내 어린 날의 풍경들을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올려 주었습니다.
구리빛으로 익어가는 나뭇잎과 밭둑길,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과 들 끝의 산,
그 산을 안고 지는 저녁하늘,
노을 물든 하늘 위를 날아가는 몇 마리 새들,
고개를 쳐들고 그 새를 바라보던 나,
그리고 동생들, 젊고 예쁜 우리 어머니....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그 노래를 부르며 장사 나간 어머니를 기다렸고,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오빠 생각」의 마지막 소절을 다 부르고 나면
왜 그리 적막해지던지, 그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동요를 이십 대에서 삼십대에 이르는
문학청년 시절에도 많이 불렀습니다.
「섬집아기」를 부르면서 어머니에 대해 생각했고,
「오빠 생각」을 부르며 거꾸로 여동생들을 생각했습니다.
그 무렵에는 집안 형편 상 다 공부시키기 어려울 경우에
여자 형제들이 희생을 감수하는 쪽을 선택하곤 했습니다.
누나나 여동생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중단하고
돈을 벌러 공장엘 나가고
그 덕분에 남자는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 가족사를 가진 남자들은
여자형제들에게 빚진 게 많습니다. 고마워해야 합니다.
「오빠 생각」을 들으며 그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노랫말 속에 들어 있는 ‘비단구두’의 의미를 생각했고
서울로 가서 소식이 없는 오빠의 모습과 내 모습을 견주어 보다가
눈가가 촉촉해져 왔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일을 손에서 내려놓고
동요만 들은 게 잘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때 같았으면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을 겁니다.
우리는 동시에 몇 가지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신문을 뒤적이거나,
운전을 하면서 노래를 틀어 놓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상대방과 이야기를 하면서 손전화를 받고
한 손으로는 메모도 합니다.
불 위에 조리하고 있는 음식이 끓고 있는데
동시에 설거지도 하고 싸움도 합니다.
아니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와 함께 정답게 걸어가면서
각자 따로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에 이미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동시에 몇 가지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노래를 깊이 있게 음미하거나 감상할 수는 없으며,
상대방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고,
하고 있는 일이 내실 있게 진행되지 못하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텔레비전에 빠져들지도 못한 채
채널을 이리저리 옮기기만 하고,
단 몇 분도 생각하며 책을 읽을 수 없을 겁니다.
아니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싸움을 할 수 없을 겁니다.
꽃이 끝없이 전시되어 있는 꽃 박람회에 가면
도리어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못 만나고 옵니다.
진기한 온갖 꽃을 다 보고 온 것 같은데
정작 마음에 담아오는 꽃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너무 많은 꽃이 있는 곳에서는 다른 꽃,
또 다른 꽃에 마음이 가 있어
제 옆에 있는 좋은 꽃을 못 봅니다.
장난감이 가득 널려 있는 가게에 가면
아이들은 수없이 이것저것을 들었다 놓았다 합니다.
그러다 정작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고르지 못하고
엉뚱한 것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돌아오면서 다른 것이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손에 든 장남감에도 마음을 오래 주지 못합니다.
너무 많은 것에 마음이 가 있으면
하나를 제대로 볼 줄 모르게 됩니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아름답고 소중하게 보지 못합니다.
많은 것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적은 것을 깊이 있게 만나는 일은 더 중요합니다.
적게 만날 때는 가까이서 자세히 보게 됩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산국화 한 송이도
가까이서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향기롭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적은 사람을 가까이서 만나는 일도 필요합니다.
깊이 있게 알아 가노라면 분명히 그 사람의 향기를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여러 가지 일을 다 잘 수행해 내는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 대신 분명히 놓치는 일이 있습니다.
노래를 단순히 어떤 일의 배경음악 정도로 듣고 살면
평생을 들어도 그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모르고 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노래가 자기 삶의 장식품에 불과하거나
있어도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 중에는 마음이 붕 떠 있는 채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어디에도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거나
삶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마음이 허공을 떠다닌다는 겁니다.
일터에서도 그렇고 집안에서도 그렇고
마음이 안착을 하지 못하고 늘
여기가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이지요.
그런 날 다른 것 다 놓아두고
음악에 푹 빠져 보는 것도 좋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찬찬히 바라보거나
그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습니다.
베란다에 물 주어본지가 오래인 꽃에 다가가
물을 주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단풍들어 떨어지는 잎을 한참씩 바라보거나
편안한 걸음으로 산책을 나서 보는 것도 좋습니다.
오래 잊었던 친구와 만나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꽃 한 송이 사람 하나가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으면
잠시 삶의 걸음을 멈추어야 합니다.
가까운 곳에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 있는데 그걸 못 보고 끝
없이 다른 곳을 찾아다니는 게 우리 삶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