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곡

Candy Dulfer - Lily Was Here

김종화 2011. 3. 25. 02:44

Candy Dulfer - Lily Was Here

 

뒷면

캔디 덜퍼 (Candy Dulfer) : 1969년 9월 19일 네덜란드(Netherlands) 암스테르담(Amsterdam) 출생
분류 : 스무드 재즈(Smooth Jazz), 누 재즈(Nu Jazz), 크로스오버 재즈(Crossover Jazz)

색소포니스트(Saxophonist)인 한스 덜퍼(Hans Dulfer)의 딸로 재즈의 강국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캔디
덜퍼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시절 부터 음악과 가까이 지냈으며, 처음으로 다룬 악기는 다섯살때 손에 잡은 드럼
이었다. 아버지의 권유로 여섯살때 부터는 색소폰을 배우게 되는데 당시 캔디 덜퍼는 소프라노 색소폰을 배우게 된다.
이는 아버지의 악기인 테너 색소폰이 어린 캔디 덜퍼가 다루기에는 너무 무거웠던 이유에서였다.

일곱살이 되면서 알토 색소폰으로 바꾸었으며 조이데르우드(Zuiderwoude) 지역에서 활동하던 콘서트 밴드(Concert
Band: 관악기와 타악기를 연주하는 합주단)인 Jeugd Doet Leven(영어로 Youth Brings Life 라는 뜻)에 가입하여
연주 활동을 시작하였다. 캔디 덜프가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서 솔로 연주를 한 것은 아버지인 한스 덜프의 밴드 De
Perikels(영어로 The Perils 라는 뜻)와 함께 활동하면서 였다.

열한살이 되던 1981년에는 De Perikels 가 발표한 음반 'I Didn't Ask' 에 참여하였으며, 열두살 때에는 네덜란드에서
매년 7월 둘째 주말에 개최되는 North Sea Jazz Festival 에서 미국의 여성 색소포니스트인 로자 킹(Rosa King)이
이끄는 밴드의 일원으로 함께 연주하여 로자 킹으로 부터 극찬을 받게 된다.

1984년, 캔디 덜퍼는 펑키 스터프(Funky Stuff)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고, 밴드와 함께
1987년에는 마돈나(Madonna)의 유럽 투어에서 오프닝을 맡아 출중한 연주 실력을 발휘하게 된다. 마돈나의 투어
에서 멋진 연주를 들려준 이후 펑키 스터프의 네덜란드 공연은 연일 매진을 이룰 정도로 성황을 이루며 캔디 덜퍼는
유명세를 타게 된다.

캔디 덜퍼는 1989년에 유리스믹스(Eurythmics)의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스튜어트(David A. Stewart)
와 함께 영화 '암스텔담의 소녀(Lily Was Here)'에 삽입된 타이틀 곡 'Lily Was Here' 를 발표하여 영화의 성공과 함께
히트를 하게 된다. 이 곡은 1990년에 영국에서 싱글 차트 6위에 올랐으며 네덜란드의 라디오 차트에서는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다.

또한 1990년 6월에는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네브워스 90(Knebworth '90)' 공연
에 백밴드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연주하기도 하였다. 핑크 플로이드와의 공연이 끝나자 캔디 덜퍼는 곧바로 데뷔 음반
'Saxuality' 를 발표하였으며 데뷔 음반에 수록된 Lily Was Here 는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 11위에 오르는 히트를
하며 전세계적으로 5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는 히트를 하게 된다.

흔히 하는 표현인 도회적 분위기의 스무드 재즈 곡인 Lily Was Here 는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