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첫눈을 기다리며
/정호승
얼마 전 청주여자교도소에서 시 낭독회를 가진 적이 있다. 수형자들에게 책의 향기를 불어넣기 위해 올해 교도소에서는 여섯번째 열린 시 낭독회였다.
강당에 먼저 와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는 그들 사이로 걸어 들어갈 때 부끄럽게도 나는 그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사회와 격리된 삶을 사는 그들을 만난다는 사실에 다소 긴장되었던 마음이 박수소리에 당장 풀어져버렸다. 비록 수형자복을 입고 있었지만 강당에 모인 그들은 어떤 단체의 연수 행사에 참석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그들은 수형자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밝고 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회자가 질문을 던지면 "네!" 하고 말하는 데에도 반가움과 즐거움이 묻어났다. 언젠가 안양교도소에 개설된 인문학 강좌에 참여했을 때 만나본 침울한 남자 수형자들과는 극히 대조적이었다.
낭독회 중간에 어깨가 드러난 드레스를 입은 한 젊은 여성이 내 시노래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불렀을 때에도 나는 그 여성이 외부에서 초청된 가수인 줄 알았다. 나중에 시집에 사인을 해주게 되었을 때 "노래 잘 들었습니다" 하고 인사말을 하자 밝게 웃는 그녀의 어디에도 범죄자의 그늘은 없어보였다.
사실 그랬다. 그들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낭독 순서가 끝나고 질문 시간이 되자 한 수형자가 "어떻게 하면 남을 용서할 수 있느냐"고 내게 질문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나 자신도 남을 용서하지 못해 평생을 전전긍긍하는데, 내가 그 문제에 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곧 '용서'야말로 그들의 가장 절박한 내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내가 아니더라도 그 누구에겐가 그런 질문을 하고 싶었음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일단 질문을 받았으므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수형생활을 하는 그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서 "용서하지 못한다고 해서 너무 자신을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용서하려고 결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심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용서도 노력하는 일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이 발견되더라도 그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 다음은 신의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는 미움과 증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송봉모 신부님이 쓴 책 < 상처와 용서 > 에서 읽은 부분을 바탕으로 한 대답이었다.
수형자들은 진지하게 듣고만 있었다.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다른 질문은 없었다. 잠시 침묵만 흘렀을 뿐이다. 그 대답은 그들에게 다소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더 고통을 가중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용서하지 못하는 과정 속에서 치솟은 분노가 결과적으로 범죄의 행위에까지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 감옥에 갇힌 자가 되어 육체도 고통받지만 영혼 또한 고통받고 있을 것이다. 용서하려고 해도 용서하지 못하는 내면의 상황에 맞닥뜨리는 순간, 그들은 현실적으로는 교도소라는 공간에 갇혀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자신의 영혼의 교도소에 갇혀 있는 것이다.
용서의 문제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이 어찌 그들뿐일까.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교도소에 갇혀 있지 않을 뿐, 용서의 교도소에 갇혀 사는 수형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용서는 인생의 가장 큰 화두다. 한 번은 법무부 교정본부에서 수형자들로 하여금 피해자들에게 용서해달라는 참회의 편지를 쓰게 하자고 의논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피해 당사자들에게 수형자들이 용서의 편지를 보내면 받아주겠느냐고 먼저 물어보았는데 대부분 편지를 받지 않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것은 그만큼 다시 떠올리기 싫을 만큼 피해의식이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용서하기 싫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12월은 용서의 계절이다. 겨울이 되어 나무가 잎을 다 떨어뜨리는 것은 용서하기 위하여 자신의 알몸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나뭇잎을 나무들의 미움과 증오의 잎이라고 생각한다면, 12월의 나무들은 그 잎을 다 떨어뜨리고 알몸으로 용서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요즘 길을 가다가 아직 마른 잎을 그대로 달고 있는 나무를 보면 '저 나무는 아직 용서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나무야말로 바로 용서하지 못하고 사는 나 자신의 모습인 것 같아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어쩌면 우리 모두 겨울이 와도 증오의 잎을 떨어뜨리지 못하는 나무인지도 모른다. 올 겨울엔 잎을 다 떨어뜨리고 저 용서의 자세로 고요히 서 있는 나무들을 통해 인간의 용서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나무들은 용서의 자세로 겨울을 보내기 때문에 이듬해 봄이 오면 다시 새 움을 틔우는 것이다.
우리도 그래야만 인생에 새해가 오고 봄이 올 수 있다. 신은 내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한 가지 용서하면 나의 잘못을 두 가지 용서해주신다고 하지 않는가. 또 용서하는 일보다 용서를 청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도 하지 않는가. 12월에 첫눈이 내리는 것은 서로 용서하라고 내리는 것이다.
< 정호승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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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lly Fletcher /하프연주 *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화이트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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