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하는 믿음 그것이 육체적인 장애이든, 정신적 장애이든, 환경적 장애이든 그 장애를 딛고 일어서는 자들은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분명한 해답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장애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중풍은 무서운 병입니다. 뇌출혈, 뇌일혈로 인해 전신에 마비가 오고, 신경이 마비되어 손과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병입니다. 때로는 언어 장애가 와서 자신의 의사를 잘 표현하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반신불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중풍을 앓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이런 절망의 삶을 살아갈 때 다행히 그에겐 다정한 네 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중풍병자를 포기하거나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아들이 계시는데 그 분이 우리 동네인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분 앞에 나아가는 자들은 병도 치유 받고, 문제를 해결 받고, 용기를 얻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소문을 들었을 때 그들 마음속에는 확신으로 가득 찼고, 그것은 곧 강한 믿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중풍 병자 친구는 걸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네 명의 친구가 침상을 둘러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가까이 계신 집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그 집 앞에 운집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3절, 4절을 읽겠습니다.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여기까지는 데려왔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기에 그 군중이 그들에겐 장애물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이 장애물을 뚫고 나아가야 했습니다. 사실, 그들은 여기서 돌아설 수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우린 할 만큼 다 해 보았어! 여기까지 데려왔는데 더 이상 어떻게 하라고?”라고 변명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침상을 메고 지붕위로 올라가, 지붕을 뚫고 친구를 예수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장애물 앞에 설 때 스스로 포기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네 명의 친구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장애물을 넘어 앞을 향해 전진했고, 더 좋은 계획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마음 안의 장애물입니다. 할 수 없다는 장애물, 불신앙의 장애물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의심하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 부정적인 생각, 난 할 수 없다는 생각, 이 불신앙의 장애물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것을 깨뜨리지 않고는 결코 내 밖에 있는 장애물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일생을 살아오면서 재난이 다가올 때마다 내게 좋은 기회가 되게 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는 인생의 어려움을 오히려 인생에 축복의 기회로 만들려고 기도하고 노력했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고난은 축복의 전조입니다. 위기는 곧 찬스가 있음을 알려 주는 사인과 같은 것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정복한 것은 에베레스트 산이 아니라 내 자신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와 친구들을 보시고 그들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5절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라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이 저들의 무엇을 보셨다고 했습니까?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에 관심이 있으셨습니까? 믿음입니다. “너희가 믿음이 있는 사람이냐?” 여기에 주님의 관심이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은 믿음의 크기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 믿음이 ‘큰 믿음이냐, 작은 믿음이냐?’하는 것이죠. 그래서 주님께서는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하여 의심하느냐?”라고 호통을 치기도 하셨고, 백부장이나 가난한 여인을 향해서는 “네 믿음이 크도다.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도 하셨습니다. 또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심으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내 삶의 생명과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을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마가복음 9장 23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큰일을 행하고, 역사를 바꾸고,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해요. 본문에 나오는 중풍병자의 네 명의 친구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는지를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릴 때마다 여러분의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어지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의 선물들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풍성하게 임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저 사람을 내가 참 좋아하는데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내가 도와줄 능력이 없습니다. 돈을 줄 수도 없고, 능력이 없지만 만약 저 친구를 주님께로 인도하기만 하면 주님께서 도와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해요. 주님을 소개하고 영접하게 하는 일이 내가 사랑하는 남편, 아내, 친구, 자녀에게 할 수 있는 최상의 선물임을 나 자신이 먼저 확신해야 합니다. 오늘처럼 날이 궂은 날은 나 같아도 교회 가기 싫을 텐데 그냥 놔두자.” 그러면 안 돼요. 그런 생각으로는 결코 전도할 수 없습니다. 영혼을 살릴 수 없어요. 오늘 주님이 내 인생에 어떻게 역사하실까? 하는 기대와 믿음을 갖아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히브리서는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했죠? 그렇습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예수님 앞에 나오면 좋은 일이 생기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들이 중풍 들린 친구를 침상에 누여서 들고 오는데 행여라도 네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바뀌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 일 납니다. 네 모퉁이를 네 명이 다 들어야 하는데 한 사람이라도 생각이 바뀌면 안 됩니다. 그들은 마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힘을 모았습니다. 그 때 중풍병자 친구가 예수님을 만나고, 죄를 용서받고, 오히려 자기가 누워있던 침상을 들고 일어나서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며 걸어 나오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마음을 합할 때 장애는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을 합해야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에 보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을 썼기 때문에 거기에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마음을 합하여 기도한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에도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합한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두 마리의 말이 함께 수레를 끌 때 끌 수 있는 짐의 양은 무려 10배인 20톤이라고 합니다. 혼자와 둘은 비교가 안 됩니다. 마음을 합해야 합니다. 사랑보다 강하고,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아가서 8장 6절에는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며”라고 했습니다. 친구를 위해서는 어떤 것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은 아까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장 소중한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행동하게 만들고, 희생하게 만들고, 인내하게 만들고, 뭉치게 만들고, 소망을 갖게 합니다. 어머니를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자식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이 땅에 오셔서 그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대신 죽으시고 갖은 어려움을 당하신 거 아닙니까? 여러분의 심령 속에 주님을 향한 사랑,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향한 사랑, 우리의 가족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그들은 지붕을 뜯는 수고, 지붕을 뜯는 일로 인해서 받을 비난과 물질적인 손실까지도 감수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지붕은 우리하고는 구조가 다릅니다. 그들은 대게 단층구조로 되어 있고, 지붕은 우리처럼 콘크리트로 된 형태가 아니라 나무를 얽어서 진흙을 바른 형태입니다. 또 지붕위에 올라갈 수 있도록 옆에 계단이 있습니다. 그들은 침상을 들어 메고 계단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어낸 것입니다. 먼지가 나고, 흙이 떨어지고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만약 그 장애 앞에서 포기했다면, 친구는 고침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떤 장애 앞에 있을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루는 산에 갔다가 금빛 나는 돌을 발견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금맥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모든 땅을 팔고 돈을 구해서 그 산을 샀습니다. 그리고 채굴하는 기계를 사서 채굴했는데, 처음에는 꽤 많은 금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곧 빚도 갚고 돈을 벌겠다 했더니, 그만 금맥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금맥이 좀 내려가다가 끝나버린 것입니다. 파고 또 파도 금이 안 나와서 채굴기계와 광산을 고물상에게 헐값에 다 팔고 떠나 버렸습니다. 고물상 아저씨가 사고 보니 채굴 기계가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왕 산 것 밑져야 본전이니까 나도 한번 채굴이나 해볼까!’해서 채굴기사를 구해서 광산에서 채굴을 시작했습니다. 채굴을 다시 시작한 그곳에서부터 딱 1m를 파고 들어갔더니 금맥이 터졌습니다. 그 밑에는 엄청난 금이 매장돼 있어서 졸지에 고물상 주인은 갑자기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 후 그 사람의 별명이 ‘1m’가 되었다고 합니다. 1m만 더 팠으면 팔자를 고쳤는데.... 1m에 한이 맺혀서 그가 ‘1m철학’을 만들었습니다. 그 후 그는 보험업을 하게 됐는데, 보험을 하다가 장애에 부딪히고, 잘 안 되고 어려우면 그는 늘 ‘1m’를 생각 했습니다. ‘한 번만 더 도전해 보자, 한 번 더 나가보자, 한 번 더 해봐야지’ 그래서 매사에 ‘1m'를 더 파는 심정으로 일을 하다보니까 무엇이든지 되더랍니다. 그는 후에 보험업계의 큰 인물이 되었고, 미국에서 최초로 연봉이 백만 달러가 넘는 보험업자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때, ‘1m'만 더 파보시길 바랍니다. 한 걸음만 더 나가 보십시오. 갈라디아서 6장 9절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 앞에 장애물이 있어도, 사람들이 모여 있어 갈수가 없어도, 저 아래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이 장애만 뛰어넘어 나가면 주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내 포기하면 안 돼.’ 할렐루야! 히브리서에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을 바라볼 때 장애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실패를 만회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장애를 극복하는 믿음을 소유하심으로 어떠한 문제나 장애라도 능히 극복함으로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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