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에 대한 영적 접근
영동세브란스병원 원목실
김 성 환
서 론
영적(靈的)이란 무슨 뜻인가? 우리는 영적(Spiritual)이라고 할 때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그 말에 대해서 한 두 마디 말로 정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오늘날 영(靈)하게 되면 대체적으로 육체와 대치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특히 호스피스에 있어서 영적 돌봄이라고 할 때 '죽은 후 영혼이 돌아가게 되는 [좋은 곳]으로 안내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이러한 관점에서 종교인들이 이 분야의 일을 많이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각자가 신봉하는 종교적 내세관을 소개하거나 그 내세를 향한 마음을 갖게 함으로서 현재 엄습하는 고통의 축(軸)을 죽음 저편에 있는 [좋은 곳]으로 향하게 하는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다. 발제자도 통증 완화에 있어서 이러한 '영적 접근'이 효과가 없거나 크게 잘못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영적 돌봄의 올바른 견해에 입각해서 접근해야 하겠다는 입장일 뿐이다.
그러면 영적 돌봄을 어떠한 측면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여러 종교들의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발표자가 기독교적인 입장만을 다룰 수 밖에 없는 제한성에 대해 양해주시기를 바란다.)
영적인 부분을 육체와 대칭 구조로 이해하는 것은 희랍 철학의 이원론에서 비롯 되었다고 본다. 그들은 인간을 영(soul)과 육(flesh), 이분법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영은 실체(實體)이고 육은 그림자이기 때문에 영만이 중요하고 육은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경건한 순례 생활을 하고자 했던 금욕주의자나 고행주의자들은 이러한 영향을 그 중심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의 입장은 그런것이 아니다. 통합적이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영(靈)적이라는 말은 구약성서에서 루아흐(ruah)라는 말의 번역이라고 한다. 그 말은 "바람" "숨결"이라는 뜻이다. 구약학자 민영진 박사는 "구약성서의 영 이해"라는 글에서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루아흐를 사용하셨는데 그것은 [생명]을 비롯하여, 그밖의 여러 가지 인간의 삶의 전체적인 측면을 상징한다고 한다. 슬픔, 분노, 욕구를 나타날때 숨결이 거칠어 지는 [감정], 강력한 바람은 한 인간의 [의지]와 [용기] 등을 내포한 것 등으로 설명했다(김성재 편, 성령과 영성, 한국신학연구소, 1999. 3, pp. 224-234). 루아흐의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들은 한 인간의 전체적 삶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신약성서에서도 예수님의 삶과 사상을 신학적으로 정리하신 기독교의 최초의 신학자 바울로 사도는 쏘마(soma)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말 역시 희랍적인 이분법이 아니라 통전적인 인간(a whole person)을 지층하고 있다(R. Bultmann,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Vol, 1, Scribners, 1951, pp. 192-220).
따라서 이러한 성서적인 해석들은 [영적]이라는 말이 사후에 대한 배려만이 아니라 임종환자의 삶 전체 즉 [현실적인 삶]도 포함하는 돌봄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임종환자의 현실은 육체적인 통증,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헤어짐에 대한 서글픔, 육체의 소멸에 대한 허탈감등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투병하고 있는 현실이다.
도날 도어(Donal Dorr)는 [영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에서 "내 안에는 내가 그로부터 행동하게 되는 중심 자리가 있다. 그것을 초점으로 하여 내가 접촉하고 있을 때 나의 자유로운 응답은 나를 나타내 준다."(영성과 정의, 분도출판사, 1990, 황종열 역, pp. 33-35)고 했다. 그 중심 자리가 바로 하느님이며 "겸손되이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ibid, pp. 18)이 영성(Spirituality)라고 한다. 즉 영적 돌봄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 분과 함께 걷게 하는 것, 생활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면 임종환자들에게 영적 돌봄을 어떻게 해야 하가?
Trevor Hoy는 "Hospice Chaplaincy in The Caregiving Team"이란 논문에서 임종환자에 대한 영적 돌봄(사목적 혹은 목회적)의 역할을 3가지로 설명하고 있다(C. A. Corr,& Donna M. Corr(ed.,) Hospice Care, Principles and Practice, Springer Pub. 1983, pp. 188-190).
그는 임종환자에게는 3가지 소망이 있는데 이 것 들을 돌봐 주는 것이 영적 돌봄이라고.....
위에서 영적 돌봄의 내용들을 소개했다. 그런데 임종환자들의 이와같은 희망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들을 임종환자에게 활용하려고 할 때 그들이 이를 거부한다고 하면 영적 돌봄은 불가능해 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우선 환자의 마음 밭 갈이 준비가 있어야 한다. 바로 이 환자의 마음 밭은 E. Kubler-Ross의 임종환자 5단계 심리중 '수용'의 단계를 말한다. 문제는 바로 그 '수용'의 단계로까지 이끄는 매개가 필요한데 그것이 [신앙]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신앙'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신앙'이라고 할 때 참으로 애매 모호하기 이를 때 없다. 물론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이라고 쉽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 상태가 과연 어떤 것이냐 묻는다면 설명이 궁하다.
이에 대한 적절한 답을 미국 서남침례교신학교 목회상담학 교수인 Dr. B. W. Brister가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고 있다. 즉 "기독교 신앙은 삶의 스타일(life-style)이며 실존적 자세이지 단순한 신조 체계(belief -system)가 아니다"(C. W. Brister, The promise of the pastoral counseling, Harper & Row, 1978, p. 12).
삶의 스타일
- 긍정적인 삶의 스타일(positive life-style) : 신앙
- 부정적인 삶의 스타일(negative life-style) : 불신앙
여기에서 신앙은 긍정적인 삶의 스타일을 말한다. 따라서 영적 돌봄의 시작은 바로 불신앙의 상태인 부정적인 삶의 스타일을 신앙의 상태인 긍정적인 삶의 스타일로 바꾸어 놓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부정적인 마음 밭의 상태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선 자기 질환에 대해 절망, 좌절하며 과거 건강했을 때를 회상하며 발병의 책임을 조상탓, 혹은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돌리고 짜증과 불평 불만,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치료거부 상태로까지 간다.
그리고 통증을 느끼는 감각에 있어서도 삶의 스타일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객관적으로 측정된 동일한 통증이지만 긍정적 스타일의 사람에게는 덜 고통스럽게 느껴지지만, 반면 부정적 스타일의 사람에게는 큰 고통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통증완화에 있어서 영적으로 돌본다는 것은 부정적(불신앙)인 마음 밭을 긍정적(신앙)인 스타일로 바꾸어 놓는 작업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임종환자는 지금 "육체적인 통증"과 "관계들의 깨어짐에 대한 불안감"과 "죽음 혹은 그 이후에 대한 두려움" 등 부정적인 마음 밭 속에서 절망하고 있다. 그러나 사목자 혹은 목회자의 신앙적인 인도 과정을 통해서 환자의 마음 밭이 긍정적인 삶의 스타일로 바뀌게 되기만 한다면 주치의의 치료계획을 긍정적으로 순응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자기 스스로의 마음속에 이미 자생적인 치유력을 강화한 상태가 되어 있음으로 인해서 치료에 속도가 붙게 될 것이며, 정서적인 불안이나, 죽음 혹은 그 이후에 대한 두려움도 수용하게 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투병 속에서 일어 날 수 있는 임종환자의 제반 문제들을 대부분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T. Hoy씨가 위에서 지적한 영적돌봄의 내용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 밭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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