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영혼을 위하여

여호와 이레

김종화 2011. 1. 30. 18:40

 

 

 

여호와 이레(1)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창세기 22장 14절)

40년 전 내가 사역을 처음 시작하던 때에 한 가지 절실한 기도제목이 있었다. 빈민촌 사역에 꼭 뒷받침 되어야 할 재정을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였다. 청계천 빈민촌으로 아무런 대책 없이 빈손으로 들어가려는 나에게 신학교 동료들이 적극 만류하며 말했다.

“김진홍 전도사 그렇게 돈키호테처럼 일하려들지 말아.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만 모여 사는 마을에 아무런 재정적인 뒷받침이 없이 그냥 들어가면 어쩌나. 나중에 지쳐서 그냥 포기하고 나올 수밖에 없게 될 것 아닌가. 그러니 큰 교회의 재정지원을 확보하여 놓고 들어가든지 아니면 크리스천 기업을 찾아가서 지원을 약속 받고 들어가야 할 것 아닌가?”

신학교 동창생들의 이런 충고에 마음이 흔들린 나는 모교인 장로교신학대학교가 있는 워커힐 뒷산인 아차산에 올라가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아차산 중턱에는 묘지들이 있었다. 나는 기숙사에서 저녁밥을 먹고는 아차산으로 올라가 묘지와 묘지 사이에 굴러 엎드려 간절히 기도드리기 시작하였다.

“하나님 제가 사명감을 가지고 청계천 빈민촌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는 일임을 확신하고 시작하려 합니다. 그런데 신학교 동료들이 저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해 줍니다. 뒷받침 받을 재정 지원을 확보해 두고 빈민선교를 시작하여야 한다고들 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저에게 일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기를 열흘 여 만에 마음에 확신으로 임하는 응답을 받게 되었다. 그 응답이 바로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하셨다.”는 응답이었다.

여호와 이레(2)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창세기 22장 14절)

그때가 내 나이 30세 때다. 청계천 빈민촌으로 들어가 빈민선교를 시작하려는 나에게 신학교 동급생들이 돈키호테처럼 무모한 도전이다. 그렇게 빈손으로 빈민촌으로 들어가서는 낭패를 당하게 된다. 재정 후 원자들을 확보하고 들어가라는 것이 동급생들의 한결같은 충고였다. 이에 나는 기숙사에서 저녁 식사 후면 아차산으로 올라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그러기를 열흘 즘 지난 후 어느 날 기도 중에 나에게 한 가지 장면이 선명히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다. 내 고향은 경상북도 청송의 안덕면이란 곳이다. 내가 살던 마을이 사부실이란 마을이다. 그 때 우리 가족은 외갓집 행랑채에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살았다. 일본에서 아버지가 죽고 빈손으로 돌아온 우리 가족이 달리 갈 곳이 없었기에 외갓집을 의지하고 살았다. 외갓집은 대농가여서 머슴들이 몇이나 되었다. 그런데 아침나절 머슴들이 일터로 나갈 때면 외할머니께 신고를 하였다. “오늘 저는 과수원에 일하러 갑니다.” 하는가 하면 다른 머슴은 “저는 못자리판으로 갑니다.”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신고를 받으면 할머니는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는 때를 맞추어 참을 보내고 점심을 보내고 마실 물도 보내곤 하였다. 머슴들은 보내 주는 식사를 먹으며 일터에서 열심히 일만 하다가 저녁나절 일을 마친 후 냇가로 가서 씻고는 들어와 밤의 휴식으로 들어가곤 하였다. 머슴이 할 일은 자신이 맡은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고 주인이 할 일은 마실 물, 먹을 식사를 때를 맞추어 보내 주는 것이었다. 나는 신학교 뒷산에서 기도하는 중에 이 장면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머슴이고 주인은 하나님이시니 내가 할 일은 일터로 맡은 빈민촌에서 열심히 일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주인 되신 하나님이 때를 따라 먹을거리와 입을거리를 보내 주실 것이다.’라는 확신이다.

여호와 이레(3)

성경에서 ‘여호와 이레’란 말은 창세기 22장에 나온다.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이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던 이야기가 나오는 장이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창세기 22장이 시작되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신다. 그 아들이 어떤 아들인가. 아브라함이 평생을 기다리고 기다려 백세에 얻은 귀한 아들이다.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아들이다. 그런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저함 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제단을 쌓을 모리아 산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하였다.

산에 오르는 중에 아들 이삭이 아버지께 물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준비되어 있으나 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답하기를 “아들아 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그러고는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을 모리아 산 정상으로 올라가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아들을 결박하고는 칼로 아들을 찌르려 하였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그를 불러 이르셨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알겠노라.”(창세기 22장 12절)

그때 아브라함이 주위를 살펴본즉 숫양 한 마리가 수풀에 뿔이 걸려 있는지라 그 양으로 아들을 대신하여 제물로 삼아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이미 준비해 두셨다.’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여호와 이레(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창세기 22장 14절)

그때가 1971년 이었다. 청계천 빈민촌에 교회를 창립하면서 한 가지 다짐을 하였다. 앞으로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이를지라도 "여호와 이레의 신앙 즉 하나님이 때를 따라 모든 것을 준비하신다."는 신앙으로 하나님께 어려움을 직고하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를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렇게 다짐하면서 선교사역을 시작한지 어언 40년의 세월이 지났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기대하였던 것보다 더 많이 주셨다. 어려운 고비를 숱하게 부딪쳤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것으로 나에게 주셨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이 깊다.

도중에 양식이 떨어져 며칠씩 굶은 적도 있었다. 그냥 냉수만 한 사람 들이킨 채 강단에 선 때도 있었고 차비가 없어 서울역에서 한양대학 뒤편에 있는 교회까지 걸어온 적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사람들에게 궁한 소리를 하거나 도와 달라거나 돈을 빌려 달라 하지 않았다. 양식이 떨어지면 하나님께서 금식기도 시키시나 보다 하고 굶었고 있으면 이웃과 더불어 나누어 먹으라 하시는가 보다 하고 나누어 먹었다. 그런 세월이 쌓여 40년이 훌쩍 지나갔다.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면 감사할 것 밖에 없다. 요즘은 교회도 세속화되면서 목사들도 돈 앞에 너무 약해지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된다.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이상 하나님이 자기 일꾼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언제나 때를 따라 준비하시고 공급하신다는 여호와 이레 신앙이 더욱 소중하여지는 때다.

여호와 이레(5)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의미가 담긴 '여호와 이레'란 말은 크리스천들이 품은 신앙고백의 중심을 이룬다. 남양만 두레마을 공동체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두레마을 공동체에는 150명의 식구가 공동체를 이루며 닭과 돼지를 먹이고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하루는 재정 담당 아가씨가 아침나절 나에게 근심어린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목사님 재정이 30만원 밖에 없어요. 오늘 중으로 700만원이 있어야 하는 데 돈이 없어 큰일이에요."하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아가씨를 내가 나무라며 말했다. "자네 두레마을 재정을 담당한지도 한 두 달이 아닌데 뭔 말을 그렇게 하는가. 돈이 없다고 말하면 안 되지. 돈이 안 보이는 것이지 없을 턱이 있는가. 두레마을의 대표가 누구신가. 하나님이 두레마을의 대표이신데 하나님께 돈이 없다는 말이 합당한 말인가. 돈이 안 보인다고 말해야지 없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여."

내가 그렇게 일러 주었더니 아가씨가 얼른 표정을 밝게 바꾸며 답하였다. "예 목사님 맞습니다. 돈이 30만원 밖에 안보입니다. 오늘 중으로 700만원 보이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였다. 그 길로 나는 외출하였다가 저녁 나절에 들어왔더니 재정 담당 아가씨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목사님 오늘 오후에 670만원이 들어와 700만원을 맞추었습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 믿습니다!" 하며 웃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들 크리스천들에게는 이런 소박하고 단순한 신앙이 필요하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신앙이다. 이런 신앙이 우리로 하여금 역경과 시련의 시기를 이겨나가게 하는 신앙이 된다.